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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을 보고 나서 휴지에 선홍색 핏자국이 묻어났을 때의 그 서늘함, 저도 겪어봤습니다. 10여 년 전 밤낮없이 일에 치여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설마 내가 치질일 리 없다고 스스로를 달랬지만, 3일째 이어지는 통증과 출혈 앞에서는 더 이상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제가 겪으며 배운 것들을 솔직하게 적어봅니다.

치질 원인과 증상 — 설마가 사람 잡는다
당시 저는 새벽 출근에 야근까지, 앉아서 일하는 시간이 하루 열 시간을 훌쩍 넘겼습니다. 수분이라고는 커피 몇 잔이 전부였고, 밥도 대충 때우는 날이 많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치질이 생기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생활이었습니다.
치질은 항문 주변의 혈관과 결합조직이 부풀거나 찢어지고 염증이 생기는 질환을 통칭하며, 크게 치핵·치열·치루 세 가지로 나뉩니다(출처: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제가 처음 통증을 느낀 건 치핵 쪽이었는데, 치핵이란 항문 안팎의 혈관 덩어리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나 부풀어 오른 상태를 말합니다. 마치 다리에 생기는 하지정맥류처럼, 항문 주변 정맥에 압력이 반복적으로 쌓이면서 혈관이 늘어지는 겁니다.
친가 쪽에 변비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저는 치질과는 거리가 멀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변비뿐 아니라 장시간 앉아 있는 자세, 수분과 식이섬유 부족, 과음과 만성 피로도 치질의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제 생활 습관이 그야말로 교과서 같은 원인들을 전부 갖추고 있었던 셈입니다.
치핵의 진행은 1도부터 4도까지 단계로 구분됩니다. 1도는 배변 시 선홍색 출혈만 있고 돌출은 없는 단계, 2도는 배변 때 덩어리가 밖으로 나왔다가 저절로 들어가는 단계입니다. 제가 병원을 찾았을 때는 아직 1~2도 사이 정도였는데, 3일이나 버틴 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 치핵: 항문 혈관이 늘어나 부풀어 오른 상태 (가장 흔한 유형)
● 치열: 항문 점막이 찢어진 상태 — 배변 후 극심한 통증과 출혈이 특징
● 치루: 항문 주위에 고름이 차고 누관(구멍)이 형성된 상태 — 세 가지 중 가장 치료가 까다로움
요약: 치질은 변비가 없어도 생긴다 — 장시간 좌식 생활, 수분 부족, 과로가 쌓이면 누구에게든 찾아올 수 있다.
치질 진단과 치료 — 두 병원의 이견
사무실 근처 내과에 먼저 갔더니 소염진통제를 처방해 주면서 빨리 전문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찾아간 항문외과에서는 "심하진 않지만 수술이 필요하다"며 바로 날짜를 잡자고 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전 직장 동료가 치질 수술 후 오랫동안 고생하는 걸 옆에서 봐왔기 때문에, 그 말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아내에게 말했더니 "치질은 수술을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며 다른 곳에서 다시 진찰을 받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대학병원을 찾아갔더니 의사 선생님은 현 상태로는 수술 없이 괜찮다며 5일 치 약만 처방해 주었습니다. 3일이 지나자 통증도 출혈도 사라졌습니다. 첫 번째 병원에서 그냥 수술을 결정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할수록 아찔합니다.
진단 과정은 보통 시진(눈으로 보는 검사)과 직장수지검사(손가락으로 항문 내부를 촉진하는 검사), 그리고 필요에 따라 항문경 검사나 항문초음파 검사 순으로 진행됩니다. 여기서 직장수지검사란 의사가 장갑을 낀 손가락을 항문에 직접 삽입해 이상 여부를 촉진하는 기본 검사로, 간단하지만 치핵과 치열 초기 진단에 꽤 정확합니다.
치료는 단계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1~2도는 온수 좌욕(40ºC 내외, 하루 2~3회)과 배변 완화제, 정맥순환개선제 같은 보존적 치료로 대부분 호전됩니다. 여기서 정맥순환개선제란 항문 주변 혈관의 탄성을 높이고 울혈을 줄여주는 약물을 말하는데, 제가 대학병원에서 받은 처방도 이 계열이었습니다. 3~4도로 넘어가면 치핵절제술이나 PPH(치핵결찰술)처럼 직접적인 수술을 고려하게 됩니다. PPH란 특수 기구로 늘어난 점막을 당겨 고정하는 방식의 수술로, 전통적인 절제술보다 통증이 적고 회복이 빠른 편입니다.
제가 이 경험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특히 항문처럼 예민한 부위를 수술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면 두세 곳에서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좋다는 겁니다. 의사도 사람이고 오진이나 과잉 진료가 생길 수 있습니다. 특히 치루가 형성된 경우 괄약근을 다루게 되는데, 괄약근이란 항문을 열고 닫는 근육으로 한 번 손상되면 재생이 되지 않아 심하면 변실금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수술의 범위와 방법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요약: 수술을 권유받았다면 한 곳의 진단만 믿지 말고 반드시 다른 병원에서도 의견을 들어볼 것 — 제 경험이 그 이유를 증명합니다.
생활관리 — 수술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였습니다
대학병원에서 받은 약이 효과를 보이면서 증상은 빠르게 가라앉았지만, 저는 그때부터 생활 방식을 손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다시 예전처럼 살다가 재발하면 그땐 수술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바꾼 건 배변 습관이었습니다. 변기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버릇을 끊고, 5분 안에 볼일을 마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두 번, 40℃ 안팎의 따뜻한 물에 5~10분씩 좌욕을 시작했습니다. 좌욕이란 항문 부위를 온수에 담가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근육을 이완시키는 방법으로, 별다른 도구 없이도 효과가 꽤 빠르게 느껴졌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확실히 차이가 있었습니다.
식단도 바꿨습니다. 흰쌀 위주의 식사에서 현미와 보리를 섞고, 아침마다 고구마 하나를 챙겨 먹었습니다. 미역국도 자주 먹게 됐는데, 미역과 다시마에 풍부한 알긴산이란 수용성 식이섬유의 일종으로, 장 속에서 수분을 흡수해 변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물도 의식적으로 하루 1.5L 이상 마시려고 했습니다. 처음엔 억지로 마시는 느낌이었는데, 습관이 되고 나서는 변 상태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 치질 재발을 막는 핵심 생활 수칙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변기 사용 시간 5분 이내로 제한, 스마트폰 반입 금지
● 하루 2회 이상 40℃ 내외 온수 좌욕 실시
● 현미·보리·고구마 등 식이섬유가 풍부한 음식 섭취
● 미역·다시마 등 알긴산 함유 해조류와 바나나·사과 같은 과일 병행
● 하루 1.5L~2L 수분 섭취로 변을 부드럽게 유지
치질은 너무 겁먹어도 안 되고 그렇다고 방치해서도 안 됩니다. 제 경우엔 생활 습관을 바꾼 이후 10여 년이 지나도록 재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상 증상이 생기면 바로 병원을 찾되, 수술을 권유받으면 서두르지 말고 충분히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요약: 좌욕·식이섬유·수분 섭취, 세 가지 습관의 변화가 치질 재발을 막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변기에서 피가 났는데 무조건 치질인가요?
A.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선홍색 피가 소량 묻어나오는 경우는 치핵이나 치열일 가능성이 높지만, 혈변의 색이 어둡거나 양이 많다면 대장 쪽 문제일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치질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에 내과를 먼저 찾았는데, 어떤 경우든 자가 판단보다는 전문 의료진의 진찰을 받는 것이 먼저입니다.
Q. 치질 초기에 수술 안 하고 나을 수 있나요?
A. 1~2도 치핵은 보존적 치료만으로 충분히 호전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이 바로 그 경우였는데, 5일 치 약과 생활 습관 교정만으로 3일 만에 증상이 사라졌습니다. 다만 3도 이상으로 진행됐거나 치루가 형성된 경우라면 수술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진행 단계를 정확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좌욕은 어떻게 하면 되나요? 특별한 용품이 필요한가요?
A. 40℃ 안팎의 따뜻한 물을 세숫대야에 받아 항문 부위를 5~10분간 담가두는 것이 기본입니다. 시중에 변기에 걸쳐 쓰는 좌욕기도 있는데, 저는 처음에 세숫대야로 시작해서 큰 불편 없이 효과를 봤습니다. 하루 2~3회 권장되며, 특히 배변 직후에 하면 효과가 좋습니다.
Q. 치루 수술은 왜 그렇게 조심해야 하나요?
A. 치루는 항문 주위에 누관, 즉 비정상적인 통로가 형성된 상태인데, 이 누관이 항문 괄약근을 통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괄약근은 항문을 여닫는 근육으로 한 번 손상되면 재생이 되지 않아, 수술 범위에 따라서는 괄약근 기능이 저하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치루 수술만큼은 경험이 풍부한 전문의에게 여러 의견을 듣고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결론
치질은 부끄럽다는 이유로 방치하다가 더 나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경험상 이상 신호가 느껴지는 순간 바로 병원을 찾는 것이 결국 가장 빠른 해결책이었습니다. 다만 수술을 권유받는다면, 특히 치루처럼 괄약근이 관련된 경우라면, 한 곳의 진단만으로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한 발 물러서서 다른 병원의 의견도 들어보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치질 관리는 결국 일상의 작은 습관에서 시작됩니다. 좌욕, 식이섬유, 충분한 수분, 그리고 변기 위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것. 거창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10여 년 전 저를 서늘하게 했던 그 경험이 지금의 건강한 습관을 만들어줬으니, 지금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면 너무 겁먹지 말되 절대 무시하지는 말기 바랍니다.
참고: 국가건강정보포털 – 질병관리청 https://health.kdca.go.k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www.snuh.org
대한대장항문학회 www.colo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