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찬 곳에서 자면 입이 돌아간다는 말,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찬 데서 잔 적도 없는데 어느 날 아침 거울 속 제 얼굴이 비뚤어져 있었습니다. 1993년, 서른 살의 일이었습니다. 그날부터 60세까지 30년을 비틀어진 얼굴로 살았고, 그 세월 동안 제가 배운 것들을 이 글에 담았습니다.

안면신경마비, 정말 침으로만 고쳐야 할까요
1993년 당시에는 구안와사(口眼喎斜)를 양방 병원에서 치료하면 오히려 영영 못 고친다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주변 어른들은 하나같이 침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했고, 저도 그 말을 믿었습니다. 동서한방병원에서 3개월을 치료받았고, 침술로 소문난 분께 대침(큰 침)을 또 3개월 맞았습니다. 결과는 "약간 풀린 정도"였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뒤, 의학계에서 안면신경마비의 주요 원인이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사실이 공식 발표됩니다. 벨마비(Bell's Palsy)가 전체 원인의 약 70~80%를 차지하는데, 여기서 벨마비란 단순헤르페스 바이러스(HSV-1) 등의 감염이나 면역력 저하로 안면신경에 염증과 부종이 생기는 질환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찬 바람 때문이 아니라 몸속 바이러스가 신경을 건드린 것입니다(출처: 서울아산병원 질환백과).
원인이 밝혀지면서 치료법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증상 발병 후 72시간, 이른바 골든타임 안에 고용량 스테로이드제를 투여해 안면신경의 염증과 부종을 가라앉히는 것이 표준 치료입니다. 람세이 헌트 증후군(Ramsay Hunt Syndrome)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항바이러스제를 병용합니다. 여기서 람세이 헌트 증후군이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ZV)가 안면신경 주변 신경절을 침범해 귀 통증과 수포, 심한 안면마비를 동반하는 질환을 말합니다. 일반 벨마비보다 회복이 더 더디기 때문에 초기에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뒤늦게 신경외과 치료를 받았을 때는 이미 마비가 시작된 지 10년이 넘은 상태였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전문의도 "너무 오래된 손상이라 회복에 한계가 있다"라고 했고, 실제로 큰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말초성 안면신경마비의 경우 신경전도 검사(근전도 및 신경전도 검사)로 손상 정도를 파악하는데, 이 검사는 발병 후 10~14일 사이에 시행해야 신경 회복 가능성을 제대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 10년 넘게 방치하면 신경 자체가 위축되어 약물이나 수술도 효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중추성과 말초성을 구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중추성 안면신경마비란 뇌졸중이나 뇌종양처럼 뇌 자체의 병변에서 비롯된 경우로, 이마에 주름을 잡을 수 있고 팔다리 마비나 언어장애가 함께 나타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반면 저처럼 말초성인 경우에는 이마 주름을 전혀 잡지 못하고, 눈이 완전히 감기지 않아 눈물이 흘러내리는 증상이 동반됩니다. 이 두 가지를 초기에 잘못 판단하면 치료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의심 증상이 생기면 영상의학 검사(Brain MRI/CT)를 포함한 신경학적 검사를 바로 받아야 합니다.
말초성 안면신경마비 핵심 증상 체크리스트
● 이마에 주름을 잡을 수 없고, 눈썹을 위로 올리지 못한다
● 눈이 완전히 감기지 않아 안구 건조 및 눈물 흘림이 생긴다
● 마비된 쪽 입꼬리가 반대편으로 쏠리고, 물이나 음식을 삼킬 때 새어 나온다
● 혀 앞쪽 2/3의 미각이 떨어지거나 귀 뒤쪽에 통증이 온다
●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리는 청각 과민이 동반될 수 있다
요약: 구안와사의 원인은 찬 바람이 아닌 바이러스 감염이며, 발병 72시간 이내 병원을 찾는 것이 회복률을 결정합니다.
30년 만에 부황으로 얼굴을 되찾다
마비된 채로 보낸 30년 동안 저는 개인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았습니다. 비틀어진 얼굴이 렌즈에 담기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가족 행사에서도 한발 뒤로 물러서 있는 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60세에, 중의학에 조예가 깊은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제안한 방법은 얼굴에 작은 부황을 뜨는 것이었습니다. 부황(附缸)이란 피부에 작은 컵 모양의 도구를 올려 음압(負壓)을 만들어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근막의 긴장을 풀어주는 전통 치료법입니다. 중의학에서는 경락을 자극해 기혈 순환을 개선하는 목적으로 사용합니다. 제가 직접 받아봤는데, 얼굴처럼 피부가 얇고 근육이 복잡한 부위에 시술하는 것은 일반 등 부위 부황과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결과는 제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10년을 맞은 침치료로도, 신경외과 치료로도 꿈쩍 않던 얼굴이 서서히 균형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이 거의 없는 수준입니다. 물론 이게 모든 사람에게 같은 효과를 준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제 경우엔 오랜 시간 굳어버린 근막과 혈류가 문제였기 때문에 이 방법이 맞았을 수 있습니다.
현대 의학적 관점에서도 재활 치료의 중요성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이-우-에-오' 발성, 눈 감기, 미소 짓기 같은 안면 근육 운동은 마비된 근육의 위축을 막기 위한 표준 물리치료 과정입니다(출처: 서울아산병원 질환백과). 온열 찜질로 혈액순환을 돕고, 비타민 B12가 풍부한 등 푸른 생선이나 굴 같은 식품으로 신경 세포 재생을 지원하는 것도 병행하면 도움이 됩니다. 여기서 비타민 B12란 신경 세포의 수초(미엘린) 형성에 필수적인 영양소로, 부족하면 신경 회복 속도가 현저히 느려집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과 운동을 병행해도,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친 만성 상태에서는 혈류와 근막이라는 물리적 문제를 직접 건드려야 한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부황이 그 역할을 해준 것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요약: 30년 만성 안면마비도 포기하지 않으면 뜻밖의 방법으로 호전될 수 있으며, 재활과 혈류 개선은 어느 단계에서나 의미가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구안와사 증상이 생겼을 때 침 맞아도 되나요, 아니면 바로 병원을 가야 하나요?
A. 저는 30년 전 침 치료만 받다가 골든타임을 놓쳤습니다. 지금은 발병 후 72시간 안에 스테로이드제를 써야 염증을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이 의학계의 공식 입장입니다. 침 치료를 병행하고 싶더라도, 먼저 신경과나 이비인후과에서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맞는 순서입니다.
Q. 벨마비와 람세이 헌트 증후군은 어떻게 구별하나요?
A. 가장 큰 차이는 귀 주변의 수포와 심한 통증 유무입니다. 람세이 헌트 증후군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원인이기 때문에 귀 안이나 귓바퀴에 수포가 생기고 통증이 훨씬 강합니다. 이 경우 스테로이드 외에 항바이러스제를 반드시 병용해야 하므로, 자의로 판단하지 말고 전문의 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Q. 안면신경마비로 눈이 안 감기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눈이 완전히 감기지 않으면 각막이 건조해지고, 심하면 각막 궤양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낮에는 인공눈물을 수시로 점안하고, 잠잘 때는 안연고를 바른 뒤 안대를 착용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눈 보호는 마비 회복과 별개로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하는 조치입니다.
Q. 오래된 만성 안면마비도 치료가 가능한가요?
A. 제가 직접 겪어본 결과,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저는 30년이 지난 뒤에 부황 치료로 의미 있는 호전을 경험했습니다. 물론 급성기 만큼 극적인 회복은 어렵지만, 혈류 개선과 근막 이완을 꾸준히 이어가면 만성 상태에서도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포기하는 것이 가장 나쁜 선택입니다.
결론
제가 30세에 안면신경마비를 앓았을 때, 바이러스가 원인이라는 사실은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원인이 밝혀졌고, 또 10년이 지나 치료법이 정립됐습니다. 그리고 저는 60세에 뜻밖의 방법으로 30년 묵은 마비를 상당 부분 되돌렸습니다.
제가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지금 불치여도 언젠가 치료법이 나온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오늘 손쓸 수 없는 병이 내일은 누구나 고치는 병이 됩니다. 지금 안면마비로 힘드신 분이라면, 일단 72시간 안에 병원부터 가시길 권합니다. 저처럼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게 제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조언입니다.
참고:
서울서울아산병원 질환백과 (벨 마비 / 안면신경마비)
https://www.amc.seoul.kr/asan/healthinfo/disease/diseaseDetail.do?contentId=31868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안면신경마비)
http://www.snuh.org/health/nMedInfo/nView.do?medid=AA000041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안면신경마비)
나카무라 테이지 지음, 주성윤 옮김, 『식사로 병을 고치는 책』, 일원서각, 1993